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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 Fragments 断片

Installation, Seoul, Korea
Montage is a Heatbeat, International Residency “Deep in the Mountains” PyeongChang, Korea.
Dimensions Variable
Drying rack, stones, bag, inkjet prints, postcards, tape, rope, plywood, paint, plastic fabric, string, wood.

I thought that in the post-Internet era, which rendered all places equal and same, I could obtain anything everywhere. However, I realised that even with globalisation, there were still local materials that only existed in certain countries. Through researching what local elements were made in Pyeongchang, I collected materials that had yet to be globalised and sought to distinguish the place’s identity. Furthermore, I wanted to delve into the relationship and history between Japan and Korea in order to grasp the metaphorical concept of “being in two different places.”

I was born and raised in Fukushima, Japan. I would have never imagined that there would be nuclear accident in my hometown before it happened. Since the tragedy, I noticed how valuable our everyday life was but simultaneously had the possibility to disappear at any moment. I did not notice it before the disaster. Since then, I concentrated on our daily lives in my project. I used everyday objects in order to understand our daily lives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In the process of exploring local materials and the history between Korea and Japan, I decided to showcase my experiences and point of view from this stay as fragments. I wrote an essay of my experiences in Korea and made objects from local materials found in Pyeongchang.

I exhibited my work in two places within the exhibition space as a rumination on theatricality, a concept which I have questioned for a long time. Through researching local materials in this globalised era, I strove to make a de-globalised work.

파편 Fragments 断片

韓国に来てから19日が経った。私は今平昌にあるPOTATO BLOSSOM STUDIOでMac Book Air に向かってこの文章を書いている。窓際にある私の席からは、山が見える。庭ではHaeinがIngridにインタビューをしている。撮影隊の人がその様子を撮影している。スタジオはRC構造で出来ていて、近代的な建物だ。

한국에 온지 19일이 지났다. 나는 평창에 있는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맥북에어13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창가에 앉아있는데, 산이 보인다. 저쪽에서는 Haein이 Ingrid와 인터뷰 중이다. 몇몇 카메라맨이 그들을 촬영하고 있다. 이곳 스튜디오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진 현대적인 스타일의 건물이다.

19 days have passed since I arrived in Korea. I am writing on a 13-inch MacBook Air at the PotatoBlossom Studio in PyeongChang. From my seat next to the window, I can see mountains. Haein is here, interviewing Ingrid. Some cameramen are shooting them. The studio was constructed using a reinforced concrete structure and built in a modern style.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식당에서 스튜디오까지 걷고 있었다. 밖은 벌써 어두웠다. 문득 하늘을 보았을 때, 오리온자리가 보였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그러나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나는 내가 한국에 온 이후로 하늘을 올려다본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네덜란드에서 보던 하늘과는 다른 하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하늘을 연상케 하는 하늘이다.


After dinner, I walked from the restaurant to the studio. It was already dark outside. When I looked up at the night sky, Orion was shining. The starry sky was the same as usual, but I realized for the first time that I hadn’t looked up once at the night sky since I came to Korea. The night sky felt different than that in the Netherlands. I felt close to Orion. The sky reminded me of the one I could see in Japan; it made me feel somewhat nostalgic. Because of Orion, I felt that I was closer to Japan than in the Netherlands.


アムステルダムで引っ越しをした翌日、私はスキポール空港へ向かい、ソウルへと向かった。新しい家からスキポール空港までの行き方がイマイチ良くわからなかったが、大通りへ出て、トラムに乗り、Rai Stationから電車に乗るのが良さそうだった。私は近くのトラムストップまで歩き、トラムに乗った。アムステルダムは雨が降ったり止んだりしていた。空港へ着いて、搭乗ゲートへと向かう。KLMに乗るのは何年ぶりだろう。直行便に乗るのは初めてかもしれなかったけど、もう覚えていない。 空港は思ったよりも混んでいなかった。並ばずに荷物チェックを終え、パスポートにスタンプをもらった。空港では、スターバックスでラテを頼もうか迷ったが、なんとなく買わずにゲートまで来てしまった。韓国へ行くのは初めてだった。


암스테르담 집에서 이사를 한 직후 나는 서울에 가기위해 스키폴 공항으로 향했다. 새로운 집에서 스키폴 공항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큰 길로 나가서 전차를 탔다. 그리고 Rai역에서 기차로 환승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 탑승구로 향했다. 내가 KLM 항공을 이용지 얼마나 됐더라? 암스테르담에서 아시아 직항편을 타는건 아마 처음 같은데, 궁금하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공항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탑승구엔 줄이 없었다. 나는 짐 검사를 마치고 스탬프를 받았다.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마실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마시지 않았다.


Just after I moved house in Amsterdam, I left for Seoul from Schiphol Airport. I was not sure how to get to Schiphol Airport from the new house. I walked to the big street and caught the tram. At Rai Station, I changed from the tram to a train. The rain in Amsterdam was intermittent. I arrived at the airport and went to the departure gate. How long ago had I last used KLM Airline, I wondered. Perhaps it was the first time taking a direct flight to Asia from Amsterdam. I don’t remember anymore. The airport was less crowded than expected; there was no queue at the gate. I passed airport control and received a stamp in my passport. I was at a loss whether or not I should get a latte at the Starbucks Coffee but finally decided against it. It was my first time visiting Korea.


アムステルダム空港を出て十数時間後、ソウルの空港に着いた。アジアで日本以外の国に着くのは久しぶりだった。韓国へ来るのも初めてだった。飛行機を降りると、アジア特有のむっとした湿気を含んた重い空気がまとわりついてきた。出口へ向かっていると、日本人の若い女の子達が歩いていた。韓国へ旅行に来た大学生達だろう。楽しそうに韓国料理について携帯で調べていた。日本へ近づいたと思った。 とりあえずお金を下ろそうと思い、インターナショナルATMでお金を下ろそうとするとカードが使えない。日本のカードもオランダのカードも使えない。不安になった。ホテルへ着いて、近くのコンビニのATMでクレジットでキャッシングを試みるが、ここではお金を引き出すことが出来て一安心した。 タクシーに乗って空港からソウルの町へ向かっていると、橋で海を超えた。ハングル文字が読めないので、不思議な感覚に襲われた。中国と日本は同じ文字を使うのに、なんで韓国はハングル文字を使うんだろう。全く読めない。 ソウルの町の中心部へ向かっていると、高速道路の横には多くの高層ビルが並んでいた。「現代」と壁に書いてある。中国語も使うのだろうか。 空気は少し埃っぽく感じた。ダウンタウンを抜けると、繁華街にあるホテルに着いた。 ソウルについて1日目は、お金も下ろせたので、とりあえずご飯を食べようと思い、ホテルの前の大通りを歩いてみた。そこは、なんだか東京の六本木のようなところだった。外国人観光客がたくさんいる。 一通り大通りを歩いてみたのだが、どこに入っていいか分からなかった。日本の蕎麦屋とラーメン屋があった。韓国で日本のご飯を一食目として食べたくなかったが、何故かベトナム料理屋に入ってしまった。


서울의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오랫동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 가본적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나는 공기가 굉장히 무겁고, 습하고, 후덥지근한 것을 알아차렸다. 공항 출구로 가는 길에는 몇몇 일본 소녀들이 있었다. 한국에 여행온 대학생들로 보였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한국음식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는 네덜란드에 있을 때보다 일본에 더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나는 국제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현금카드도, 일본 현금카드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약간 혼란스러웠다. 호텔에 도착해서 근처의 편의점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서울의 중심부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나는 커다란 다리를 지나 바다를 건넜다. 택시에 타고 있는 동안, 나는 한국어로 된 몇몇 광고와 간판을 보았다. 나는 한글을 전혀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일본과 중국은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데, 한국은 한글을 사용할까? 고속도로를 따라 많은 고층빌딩단지가 있었다. 벽에는 중국 글자로 “현대”라고 쓰여져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한자를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약간 먼지투성이인 공기를 느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나는 호텔 정문에 있는 큰길을 걸었다. 그 지역은 이태원이라고 불렸다. 도쿄의 롯폰기와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보았다.

Incheon Airport

Ten hours after leaving Schiphol Airport, I arrived at Incheon Airport. I hadn’t been to any Asian countries except for Japan in a long time. It was also my first visit to Korea. When I got off the plane, I noticed that the air was so heavy, humid, and warm—a quality particular to Asia. As I headed towards the airport exit, there were several Japanese girls. They seemed like college students who came to Korea for sightseeing. They were checking the names of Korean food on their phones. In Korea, I felt that I was closer to Japan compared to when I was in the Netherlands. For the time being, I tried to withdraw money from the International ATM, but I couldn’t use my Dutch nor Japanese ATM cards. I became a bit uneasy. Upon arriving at the hotel, I went to the convenience store nearby. I felt relieved to be able to withdraw money with my credit card. I took a taxi to get to the centre of Seoul, crossing the Han River on a huge bridge. From the taxi, I saw some advertisements and signs written in Korean letters. Because I couldn’t read any of the Hangul, I was struck with a strange feeling. Why does Korea use Hangul letters even though Japan and China use the same characters? There were many blocks of high-rise flats along the highway. “Modern” was written in Kanji on the wall. I wondered if they used Chinese characters in Korea. The air felt a little dusty. I arrived at the hotel in the downtown area. Upon arriving at the hotel, I thought about what I should eat for dinner. As I walked down the main street in front of the hotel, an area called Itaewon, I felt as if I was in Roppongi in Tokyo. There were many foreigners.


韓国の平昌にあるスタジオでFacebookを開くと生業(なりわい)裁判の動画が上がっていた。生業裁判とは、福島県と隣接する都道府県の住人約3800人が国と東京電力に損害賠償を求めた福島原発訴訟の裁判だ。 その結果が10月10日に出たようで、結果は裁判所が国と東電の責任を認めたとあった。動画を見ると、多くの男の人が泣いていた。もう誰も福島の話なんてしないと思っていたけれど、まだ戦っている人がいるんだと思った。福島と平昌の山の写真の作品を作りながらこの裁判のニュースが流れてきて、それを韓国で見るのはなんだか変な気持ちだった。涙が止まらなかった。 昨日福島の山の写真を探しながら、山の写真には必ず除染で集められた放射線汚染土壌が積まれたフレコンバックの黒い山が写っていた。私は福島で山の写真を撮っていたのではなく、フレコンバックを撮った写真の背景が山だったのだ。 東京に移り住んで、オランダに移住してから、福島に住んでいたころは山に囲まれていたんだと気がついた。東京では山ではなく高層ビルに囲まれていた。オランダに移ってからは、水平線しかなく、山はなかった。平昌は山に囲まれていた。山奥だ。近所にコンビニもなく、商店も一件もない。スタジオからは10分程車で降りたところに小さな町がある。スーパーが2件ある。私たちは週に1度、日曜日に、買い出しにバスで行くことが出来た。 スーパーは特に日本のスーパーと変わりはなかった。ポカリスエットが売っていた。なんだか嬉しい気持ちになった。バナナが売っていなかったときがあった。週に一度の買い出しで、バナナがないのは致命的だった。仕方がないので、りんごを買うことにした。りんご、にんじんジュース、マンゴーヨーグルトジュース、ヤクルトみたいな飲み物、小分けになっているヨーグルトを買った。 9月の中旬に平昌にきて、今10月12日だ。オランダから飛行機に乗る前に、ネットで10月下旬までの平昌の天気を調べた。10月下旬の最低気温は1度だった。その時のアムステルダムの最低気温は確か9度とかそのぐらいで、そのときの私には1度と言われてもどのくらい寒いのか分からなかった。冬用のコートを持っていこうかどうしようか。かさばるし、スーツケースは23kgひとつしか持っていけない。でも寒いのは耐えられない。結局ユニクロのダウンと冬用のコートを持っていくことにした。 帰りに東京に行くから、そのときに洋服は置いていけばいい。オランダの家には、日本から持っていった服が溢れていた。8年間の間に人はこれほどの荷物を集めることが出来るのかと思った。 今日の平昌は寒い。曇りで雨が降ったり止んだりしている。山の木々は少しずつ紅葉してきて、赤や黄色の色に変化してきた。スタジオがあまりに寒くて、どうしようかと思っていたのだか、建物はRC構造で、新しく、天カセ型のエアコンが付いている。そういえばエアコンを入れればいいんだったと思い、スイッチを入れたところ、10分ほどで快適な温度になった。


한국, 평창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인터넷을 켜고 페이스북에 접속했을 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소송에 관한 짧은 영상을 발견했다. 후쿠시마와 그 주변에 인접한 지역 주민 3800여 명이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 회사에 손해 배상을 청구한 소송이다. 법원은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 회사가 약 5억엔을 지불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많은 사람들이 울고있었다. 나는 2011년 3월 11일에 참사가 일어난지 6년이 넘게 지났기에 아무도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더이상 얘기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정부와 도쿄 전력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 후쿠시마와 평창에 있는 산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전날 후쿠시마 산의 사진을 찾고 이썽ㅅ다. 내가 후쿠시마에 있는 산들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거기엔 항상 후쿠시마 전역의 방사능 오염 토양으로 채워진 커다른 검은 가방들이 보였다. Litate Village의 쌀이 자라던 땅에는 수많은 가방이 놓여있었다. 나는 후쿠시마 산의 사진을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산과 함게 보이는 수없이 많은 검은 가방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도쿄로 이사를 갔고, 후에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다. 내가 후쿠시마에 살았을 때 나는 산에 둘러싸여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도쿄에 있을 때는 난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산은 커녕 수평선 밖에 없었다. 평창에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긴 깊은 산 속이다. 편의점도, 가게도 없다. 차로 10분정도 가면 평창의 작은 도시가 있는데, 거기엔 두 개의 슈퍼마켓이 있다. 우리는 매 주 일욜마다 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간다. 슈퍼마켓은 일본의 슈퍼와 상당히 비슷하다. 포카리 스웨트를 살 수 있는 곳이다. 지난 주에는 바나나를 사지 못했다. 대신 사과를 샀다. 나는 사과, 당근 쥬스, 망고 요거트 쥬스와 요거트를 샀다. 나는 9월 중순에 평창에 왔다. 오늘은 10월 12일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미리 평창의 날씨를 체크해보았다. 10월말의 최저기온은 1도였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약 9도 정도였다. 과연 내가 1도를 어떻게 느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겨울 코트를 가져가야할까?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건 23kg짜리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난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다. 결국 나는 유니클로의 다운 자켓 하나와 겨울 코트 하나를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난 일본에 있는 집에 옷을 가져다 두기 위해 일본에 들렀다. 암스테르담에는 8년간 일본에서 가져온 옷들이 엄청 많았다. 오늘 평창의 날씨는 굉장히 춥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고 있다. 산에 있는 나무들의 색이 변하고 있다.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고 있다. 나는 스튜디오의 에어컨을 켠다.

October 11, 2017

When I opened up the Internet at the studio in PyeongChang, I found on Facebook a short film on the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Lawsuit. The residents of Fukushima and surrounding prefectures, around 3800 people in total, started the lawsuit against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Tokyo Electric Company (TEPCO) in order to claim compensation for damages. The court decided on October 10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EPCO were indeed responsible and should compensate those affected 500 million yen. In the film, many men were crying. I had thought no one talked about Fukushima disaster anymore since more than six years had passed since the disaster on March 11, 2011. At that moment, I realized that many people were still fighting against the government and TEPCO. While creating photographs of the mountains of Fukushima and PyeongChang, the news of the judgement came. It felt strange to see it while I was in Korea. The tears would not stop flowing. I was looking for a photo of the mountains of Fukushima yesterday. Looking through the photos, appearing again and again were many large, black bags, filled with soil from all over Fukushima, highly contaminated by radiation. In Iitate Village, there were many bags on the ground where rice fields once existed. I had not intended to take a picture of the mountains of Fukushima, but I ended up taking a picture of tons of black bags with the mountains as the background. Since moving to Tokyo and later, immigrating to the Netherlands, I noticed that I was surrounded by the mountains when I lived in Fukushima. I was surrounded by skyscrapers when I was in Tokyo and there was only the flatness of the horizon in the Netherlands. In PyeongChang, I was again surrounded by the mountains. It was deep mountains. Here, there were no convenience stores nor shops. The small town of PyeongChang, where there were two supermarkets, was 10 minutes by car. We were able to go shopping every Sunday by bus. The supermarket was quite similar to ones in Japan; I could purchase Pocari Sweat. For some reason, that filled me with joy. I couldn’t get bananas last Sunday, and so I bought apples instead. I bought apples, carrot juice, mango yoghurt juice, Yakult, and yoghurt. I came to PyeongChang in the middle of September. It is October 12 today. I checked the weather of PyeongChang before coming to Korea. The lowest temperature at the end of October was 1 degree Celsius compared to around 9 degrees Celsius in Amsterdam at that time. I couldn’t imagine how 1 degree Celsius would feel. Should I bring winter coat? I could only bring one suitcase with a maximum of 23kg, but I can’t stand the cold weather. In the end, I decided to bring one light down UNIQLO jacket and a winter coat. Before I return, I will go to Japan so I can leave my clothes at my home in Japan. In my home in Amsterdam, I still have a lot of clothes I brought from Japan. I wondered whether or not people could collect such baggage in the span of eight years. It was so cold here in PyeongChang today—the weather cloudy with intermittent rain. The colour of the trees in the mountains were changing as the leaves turned shades of red and yellow. The studio became cold. I wondered what I should do. The building had a RC structure with a new type of air conditioner system, and so I thought it would be good if I switched on the air conditioner. Turning it on, the studio reached a comfortable temperature in about 10 minutes.


日本と韓国の歴史について調べていくうちに、自分が日本人だということを韓国人に言うのは少し怖くなった。私は中学までしか歴史を勉強していない。中学の歴史の授業でも、第二次世界大戦でアメリカがGHQとしてやってきたことくらいしか覚えていない。韓国との関係は、ニュースで出て来る従軍慰安婦問題くらいしか知らなかった。日本の教科書は、全て検閲がかかっている。10代の頃に学校で習う段階で、その情報がどの程度信憑性があるかなんて誰が考えるだろうか。その通り、私はなんの疑いもなく日本教育を受けてきた。高校では一年間だけ世界史を学び、あとは地理しか勉強しなかった。 日本の教育では教わってないこと、歴史認識の違いがあることは、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 竹島問題について、日本の外務省のサイトと、韓国の外務省のサイトを調べてみた。案の定、全く別のことが書かれていた。起きていることは一つの出来事なのに、こんなにも見え方が違うんだと思った。 平昌に来てから、まだ一度も日本人に会っていない。

일본인이라는 것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나는 내가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역사에 대해 배운 것은 중학교 때까지가 다였다. 역사 수업들은 거의 기억도 잘 안난다. 나는 두 나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모든 일본 교과서는 정부에 의해 검열된다. 10대일 때 누가 교과서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생각이나 할까? 나는 그 재난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의 교육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1년 동안 역사를 공부하고, 2년 동안 지리를 공부했다. 두 나라 간 역사의 인식차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한국 외교부의 웹사이트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그들은 서로 정 반대인 입장을 적어놓았다.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 뿐임에도, 그걸 인식하는 법은 당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평창에 온 이후 아직 일본 사람을 본적이 없다.

Being Japanese

As I looked more closely into the history between Japan and Korea, I started to become afraid to tell Koreans that I was Japanese. I only studied history until junior high school. From those classes, I only remembered that America was one of the key player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I hardly remember what I learned in those classes and even less, the history between the two counties. In regards to Japan’s relationship with Korea, all I knew was the controversy of comfort women as it appeared on the news. Japanese schoolbooks were all censored by the government. Who thinks about the reliability of information in schoolbooks as a teenager? Before the disaster in Fukushima, I hadn’t thought to doubt the education in Japan. I studied world history for a year and geography for two years when I was in high school. I thought then that it was necessary to think about the differences in historical recogni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what was not being taught in the Japanese education system. I examined the issues surrounding Takeshima Island using the websites of foreign affairs of Japan and Korea. As expected, the texts were contradictory. Although a singular event, the perception of it changed according to the writer’s position. I have yet to meet any Japanese people since arriving in PyeongChang.